뜨거운 사랑을 해놓고 자신은 뜨거운 사람이 아니란다. 아니, 뜨거운 사람을 만나면 슬그머니 피한단다. 달달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으로 스타덤에 오른 지 벌써 10년이 다 돼서일까,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공유(37)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중간 온도’의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덜 열정적인 배우로 보일 수 있으니 온도를 감출 법도 한데, 대중의 시선에서 다소 자유로워진 모양이다. 신인시절부터 존경하고 동경하던 전도연(43)에 대해서는 “평소라면 피해 다녔을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과 달리 너무나 뜨거운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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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성격이 다르다. 난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을 힘들어한다. 난 미적지근한데 전도연은 뜨겁다. 난 뜨거운 사람을 피한다. 옆에 있으면 데일 거 같다.” 하지만 영화 ‘남과 여’(감독 이윤기)에 출연한 결정적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뜨거운 ‘멜로의 여왕’ 전도연 때문이다.

“전도연 선배가 ‘무뢰한’(2015)같은 영화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게는 매우 강렬했다. 실제로 밀착해 호흡해보고 싶었다. 또 내가 19금 멜로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신뢰할 수 있는 여배우가 필요했다. 솔직히 전도연 아니었으면 이 영화 안 했을 것이다.”

데뷔 초기부터 우러르던 선배이기도 했다. 실제로 함께 해보니 “작업의 과정이 너무 좋았다”며 즐거워했다. “너무 섬세하다. 막연히 동물적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이성적인 섬세함도 갖고 있더라. 그래서 질투가 났다. 나도 나름 디테일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까불지 말아야겠다, 속으로 반성 많이 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면서 무릎을 딱 친 배우가 여자는 전도연, 남자는 송강호(49)다. 송강호와 영화 ‘밀정’을 촬영 중인 공유는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비유했다. “이게 다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남과 여’는 자녀 문제로 핀란드에서 지내게 된 두 남녀가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에 몸을 섞고 이름도 모른 채 귀국하나 남자 기홍(공유)이 여자 상민(전도연)을 찾으면서 다시 불붙는 사랑을 그렸다. 기홍은 우울증에 걸린 철부지 아내와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는 어린 딸을 둔 건축가로 자신처럼 삶이 녹록지 않은 상민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첫 베드신이 단지 격정이 아닌 위로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유는 “어른의 방식으로 한 위로”라며 “상민이 집중하지 못하자 기홍이 잠시 멈추고 기다리는 그 신이 나도 참 좋았다”고 했다.

이렇듯 ‘남과 여’의 설정은 불륜이나 두 배우의 설득력 있는 연기로 거부감이 적다. 여기에는 사회성 영화 ‘도가니’(2011)에 출연한 공유의 이력과 그의 강아지처럼 선량한 눈매가 한몫 한다. ‘화장’(2014)에서 직장 부하의 젊음을 탐하던 안성기가 평소의 바른생활 이미지 때문에 인간적으로 이해되고 용납됐던 것처럼 공유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반듯한 이미지 덕을 봤다는 지적에 공유는 “기분은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반듯하거나 착하진 않지만 많이 벗어나 있는 사람은 아니다”면서 “튀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며 웃었다.

더구나 극중에서는 베드신도 불사하는 ‘남자 배우’지만 실제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남자 사람’이 바로 공유다. “기홍이 나와 참 많이 닮은 캐릭터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기홍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느끼는 것은 죄가 아니다. 다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가 아니냐의 차이다.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으나 선택의 기로에서 나라면 아예 (사랑을)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기홍의 이전 삶을 생각할 때 상민에게 먼저 찾아갈 저돌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 그렇게 수동적인 인물이 먼저 상민을 찾아갈 만큼 이성을 잃지 않았나 싶다.”

기홍의 폭주를 저지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던 아내가 반성 끝에 던지는 따뜻한 말 한 마디다. 공유는 그 ‘문제의 부엌신’을 찍으면서 눈물을 쏟았다고 털어놨다. 영화 속에서는 우는 장면을 볼 수 없다.

“기홍의 외로움을 알아준 아내의 그 대사에 진짜 감정이 북받쳤다. 기홍은 같이 사는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 외로운 남자다. 혼자일 때보다 누구와 같이 있는데 외로움을 느낄 때가 더 무섭다. 말도 못하고 설명도 힘들다. 그렇게 미치도록 외로울 때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갑자기 눈물이 펑 터질 수 있다.”

기홍처럼 감정의 파고가 큰 사랑은 해봤을까? 공유는 잠시 머뭇하더니 “그런 사랑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아련해진다. 30대 초반 때다. 내가 가장 아팠던 순간. 사랑의 아픔을 맛봤다. 뜨거운 사람들 기준에서는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뜨거웠다.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뜨거웠다. 그리고 뜨겁게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란 주장에 반대한다. 그걸로 사랑의 크기를 재단할 수 없다.”

공유의 ‘적정온도 유지론’은 연기를 통한 희열로 이어졌다. “실생할의 공유는 인간의 체온이 유지되는 정도가 좋다. 하지만 연기할 때는 다르다. 실제 나를 외면할 수 있어 연기할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하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바로 본래의 공유로 돌아온다.”

배우로서는 열려있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다소 폐쇄적인 사람, 그게 공유라는 것이다. “상투적이나 나이가 들면서 유연해졌다. 예전에는 내 마음이 뾰족했다. 기술적으로 연마된 체세술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상황이 마치 내 자신을 속이는 거 같아 싫었다. 그런 마음이 쌓이면 한번씩 터져 나왔다. 나이가 드니까 덜 터져 나온다.”

사람을 만날 때면 마음 속 경계심이 작동했었다. “일로 만나는 만남들이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내 속이 많이 썩었는데 이제 많이 단련됐다. 나 스스로 대견하다.”

출연작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줄고 액션이나 스릴러, 멜로 등 진한 이야기가 늘고 있다. “예전에는 대중도 생각했다면 점점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있다. ‘남과 여’도 그렇다. 주변에서 진짜로 하게? 그랬는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군대 다녀온 뒤 좀 더 심플해진 느낌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 피곤한 스타일인데, 나이가 들수록 머리와 몸이 가벼워진다.”

몸은 실제로도 가벼워졌다. 운동광인 그는 ‘밀정’ 때문에 기홍을 연기하며 뺀 살을 유지하고 있다. 키 184㎝에 74㎏밖에 안 나간다.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배가 좀 나오는 게 맞는데 한편으론 배 나온 사람의 베드신에 몰입이 될까. 판타지도 좀 필요하니까. 기홍은 살이 좀 없는 사람인 게 좋겠다는 생각에 원래 내 몸의 근육과 무게를 줄여 몸 전체를 좀 납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공유는 다년간 운동을 한 사람이 근육질 남자처럼 안 보이게 살을 뺐을 때, 얼마나 비주얼적인 등 근육이 만들어지는 여실히 증명해보인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일치 안 된 그 남자의 눈에 맺힌 눈물과 금방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에서 기존에 우리가 못 본 공유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원동력은 그 남자 공유 그리고 그 여자 전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