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얼굴은 백성의 마음을 담는 얼굴이다. 백성의 얼굴은 왕이 만드는 것이다. 백성의 얼굴이 곧 군주의 얼굴이다"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왕의 얼굴'은 조선 15대 임금이었던 광해군에 관한 이야기다. 선대 임금인 선조 치하에서 왕권을 둘러산 암투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난관을 극복하고 광해군이 임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선조에게는 아들이 14명이나 있었는데 정실 부인이 아닌 모두 후궁의 소실들이었다. 선조는 세자 책봉을 놓고 고심하던 어느날 왕자들을 불러놓고 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장자인 임해군(광해군의 형)은 '왕은 늑대와 같은 이다. 무리짓지 않고 고독하게 사냥하는 이가 왕이 되어야 간신들의 아첨과 모략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답한다.

후궁 김귀인(인빈)의 아들 신성군은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도' 4가지를 이야기하며 왕은 군자와 같은 이어야 한다"고 답한다.

반면 광해군은 '왕은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답한다. 백성들의 고통과 상처를 느낄 줄 알아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성들의 고통을 제것인 양 아파할 줄 알아야 왕좌가 주는 안락함에 물들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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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드라마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요즘 게임업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대표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최근 엔씨소프트는 최대주주인 넥슨이 경영참여를 선포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가히 '왕'에 비견될 만한 위치에 있다. 그가 갖는 상징성은 엔씨를 엔씨답게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동안 갖가지 내우외환을 겪어오면서도 사내에서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그만큼 직원들로부터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2012년 6월 김택진 대표가 자신의 지분 14.68%를 넥슨에 넘기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당시 엔씨와 넥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엔씨소프트에 대한 대내외 신인도가 곤두박질 쳤다는 것이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메카임을 자부했던 엔씨의 자존심에 흠집이 갔고, 많은 직원들이 엔씨를 떠나게 된 원인이 됐다. 김택진 대표를 둘러싸고 그의 회사 경영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급기야 엔씨의 소액주주들이 김택진 대표 퇴진요구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경영참여라는 난국을 타계할 돌파구로 넷마블게임즈를 끌어들인다. 엔씨는 주식교환 방식을 통해 자사주 8.9%를 넷마블에 내주는 강수를 둔다. 장외 주식매입이 끝나면 넷마블은 엔씨의 3대 주주가 된다.

엔씨는 넷마블과의 주식교환이 넥슨과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넷마블이 신주를 발행한 것에 비해 엔씨의 자사주 매도는 경영권 방어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직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늑대를 잡으려고 호랑이를 끌어들인 꼴이 될 수도 있다.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을 맞은 당시 조선의 상황과 국가적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정쟁으로 인해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하고 명나라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요즘 엔씨소프트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공교롭게도 넥슨은 일본 법인이고, 넷마블은 중국 텐센트가 2대 주주다)

전란이 발발한 지 보름여 만에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고, 선조가 파천(왕이 수도를 버리고 피난감)길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 광해군은 선조의 파천을 강하게 반대한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을 백성들은 더 이상 용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땅에 떨어진 신망을 되찾기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이에 광해군은 선조에게 본인이 세자로 나서 왕을 대신해 백성들을 이끌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른 바 '분조'(조정을 나누어 정사를 봄)다. 이를 통해 광해군은 세자로 책봉되고 전란 이후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

비록 허구적 상상력이 가미되긴 했지만, 드라마 속 광해군을 둘러싼 당시 조선의 상황과 엔씨소프트의 현재 상황은 묘하게 맞닿아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가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역적이 될 수도 있다.

김택진 대표는 10년, 20년 후에 역사가 그를, 그리고 엔씨소프트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전란이 끝나고 후세 사람들이 일신의 안위만 챙긴 왕으로 기억할지, 피흘려 싸운 백성들을 위해 정치를 편 성군으로 기억할지는 김택진 대표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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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왕위에 오른지 15년만에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실리적 외교와 현실 감각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편 왕으로 평가된다. 새롭게 대륙의 강자로 떠오른 여진족과 화친을 주장할 만큼 국제정세에도 밝았다.

광해군이 명과의 사대외교를 버리고 오랑캐라 멸시하던 여진과의 외교를 선택한 데에는 당시 전란으로 고통받는 백성들과 힘없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바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광해군은 이렇게 말한다. '무섭게 커나가는 여진, 중원 한복판에서 명국과 언제 판세가 뒤집힐지 모른다. 이럴 때 재조지은(거의 멸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이니 체면이니 내세웠다가 이 땅을 또 다시 불더미에 밀어넣을지 모른다. 자존심, 체면, 명분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지,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그런게 무슨 소용인가, 난 이땅에 또 다시 전란이 일어나는걸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오는 3월 엔씨소프트는 정기주총을 통해 김택진 대표의 재임 여부를 결정한다. 결과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김택진 대표는 그동안 자신을 믿고 일선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직원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택진 대표 뿐만이 아니다. 그를 비롯한 엔씨소프트 경영진 모두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경영 마인드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엔씨소프트의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 '왕의 얼굴'은 제목 그대로 관상을 소재로 역사적 허구를 가미한 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대로 자신의 얼굴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다만 매일 아침마다 살펴야 할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직원들의 얼굴이 곧 CEO의 얼굴이다.


/최진승 기자 jin@thegam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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