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주인공 '줄리엣'(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괴팍한 야수의 따뜻한 영혼을 발견하는 순수하고 밝은 소녀 '벨'(뮤지컬 '미녀와 야수'), 순수하고 감성적인 청년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마력의 여인 '롯데'(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자 출신인 '김생'과 사랑에 빠지는 양반집 규수 '홍랑'(뮤지컬 '피맛골 연가')….

뮤지컬스타 조정은(35)은 사랑받는 꽃다운 여인이었다. 또렷한 눈망울과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한몫했다. 데뷔 10년째로 접어든 2012년부터 여인의 결이 좀 더 다양해졌다. 사랑을 받는 대신 현실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아픔을 끌어안았다. 지지부진한 삶을 힘겹게 헤쳐 나갔다.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살았지만 돈키호테의 진심 어린 호소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알돈자'(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딸 '코제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판틴'(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그랬다. 안타까운 이 여인들은 조정은의 깨끗한 이미지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지난한 극중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 받았다. 

연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웠고, 아들 온조와는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는 그래서 조정은에게 어울린다. 한민족 역사 유일의 개국여제로 부를 만한 '소서노'는 용맹한 전사의 여자 영웅 이미지가 강하다. 언뜻 여리여리하다는 인식이 짙은 조정은에게 다소 낯선 캐릭터일 듯하다. 

서울예술단(이사장 김현승)의 창작가무극 '소서노' 속 소서노는 그런데 여전사라기 보다 '대인'이다. 소서노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만큼, 역사적 사실(fact)에 상상(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으로 그녀의 결을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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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의 말마따나 무엇보다 '큰 마음'으로 "남자를 품어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여성이다. 칼을 잘 쓰지만 무력으로 나라를 쟁취하거나 확장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적인 힘과 권력, 영토 확장이 강조되는 기존의 건국신화와 대비된다. 한국 공연 작품 중에서 드물게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만틈 포용과 화합, 사랑이라는 이념이 강조된다. 이에 따라 사랑을 받는 역부터 아픔을 체험한 역까지 고르게 경험한 조정은이 이를 두루 품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소서노는 공감할 줄 아는 리더죠. 그런 따뜻한 부분을 그리고 싶어요. 칼을 쓰기보다, 생명을 먼저 소중하게 다루는. 그런 소서노에게 많은 분들이 동희할 거라 믿어요." 

서울예술단은 조정은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2002년 이 단체의 단원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데뷔했다. 이 작품 덕분에 신인상도 받았다. 2005년 '로미오와 줄리엣'에 다시 출연한 뒤 서울예술단과 이별했다. 객원배우로서 서울예술단과 9년 만에 작업하는 셈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서울예술단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죠. 고향 같아서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예전에 함께 작업한 선배님들도 많이 있는데 저를 대견스러워해 참 감사했어요. 데뷔 때가 생각이 나서 초심을 다지는 계기도 됐고요."

사극에 참 잘 어울리는 배우다. 조정은 역시 "우리가 살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동의했다. "예전에는 자유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무엇인가 이뤄내려고 하는,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극이 매력적이죠. '피맛골 연가'의 홍란도 서자와 사랑이 금기시되는 세상에 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이뤄내려고 하죠.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호호호."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어렵더라도 희망을 위해 나아가는 캐릭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또한 같다. 알돈자와 판틴을 연기한 최근에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다. "알돈자는 연기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라고 노래하는 과정까지 참고 견디는 캐릭터죠. 힘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 절망까지 내려갔음에도 희망을 잡고자 내는 용기. 당시에는 '다시는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또 하고 싶어요. 판틴은 중간에 죽지만, 마지막 장면에 장발장 앞에 다시 나타나죠. 순수함이 꺾이긴 했으나 희망은 꺾이지 않았다는 거죠. 예전의 저라면, 할 생각이 없었던 캐릭터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공감하는 갈고리가 생겨났어요."

지난해 말 소극장 뮤지컬 '빨래'의 연출가 겸 작가 추민주와 작곡가 민찬홍이 다시 의기투합한 뮤지컬 '어차피 혼자' 낭독 공연에 참여하기도 한 조정은은 앞으로 고르게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도전이나 변신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다만,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국한하지는 말자는 마음이죠. 그 때 그 때 공감하는 역을 크든 작든 맡고 싶어요. '소서노' 역시 창작 초연인만큼 욕심을 내기보다 정성을 다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소서노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해요."

조정은과 호흡을 맞추는 주몽 역은 '윤동주, 달을 쏘다' '김종욱 찾기'로 주목 받은 서울예술단 단원 박영수다. 비류 김혜원, 유리 김도빈, 연무발 이시후, 주렴 박석용 등이 출연한다. 서울예술단 정혜진 예술감독이 연출한다. 작가 이희준이 극본과 작사를 맡았다. 미술감독 이태섭이 구상한 판타지 무대, 작곡가 김길려의 웅장한 음악이 더해졌다.

서울예술단과 천안문화재단이 공동제작했다. 24~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후 4월 5~12일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2만~8만원. 02-523-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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