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인 1994년은 아직 아날로그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 있는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주옥같은 명곡이 쏟아졌는데 '마법의 성'이 대표적이었다. 김광진(50)과 박용준(45)으로 구성된 듀오 '더 클래식'의 1집 '마법의 성'의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발매 즉시 단숨에 '국민가요'로 발돋움했다. 

그룹 '서태지와아이들' 데뷔(1992)와 그룹 'HOT' 데뷔(1996) 사이에 정확히 낀 1994년, 세상에 울려 퍼진 '마법의 성'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는 동화 같은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건드렸다. 어른들에게는 순수로의 회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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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은 이후 '여우야' '송가' '내 슬픔만큼 그대가 행복하길' '해피아워' 등의 히트곡을 냈다. 그러나 1997년 3집 발표 이후 각자 솔로로 연주 활동에 나서며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각자 음악 행보는 이어갔다. 김광진은 '편지' '동경소녀' 등의 솔로곡을 후배들이 잇따라 재해석하면서 신세대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별을 찾는 아이'를 통해 아이유와도 작업했다. 국내 최초 공인 재무분석가(CFA) 뮤지션인 그는 2007년 운용사 주식형 펀드 수익률 1위를 차지한 동부자산운용의 더 클래식 펀드 시리즈를 열어 주목받기도 했다.

박용준은 '과속스캔들' '신기전' '오감도' 등 영화 음악, 조용필·신승훈·이승환·김장훈·이소라·유희열·아이유 등의 앨범작업에 참여하면서 현시대와 호흡했다. 

더 클래식이 17년만에 다시 의기투합했다. 13일 새 미니앨범 '메모리 앤드 어 스텝(Memory & A Step)'을 내놓는다. 

김광진과 박용준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박용준은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이사한 뒤 어른이 돼서 다시 찾아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약 20년 가까이 각자의 음악적 색깔이 굳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작업하는 건 쉽지 않았을 법하다. "정말 20년 전 어떤 '마법'처럼 그냥 '마법의 성' 하나로 꿈 같은 일을 겪었죠. 다시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게 더 클래식이라는 통로였으면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박용준 씨가 필요했죠. 훌륭한 밴드의 구성원은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박용진 씨 역시 대체할 수 없었어요."(김광진)

 "광진이 형이 변하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예전에 살던 동네가 개발되고 낯선 빌딩들이 들어오면 이상하잖아요. 근데 광진이 형이랑 다시 작업하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주위에서 내가 투자할테니 땅을 빌려달라고 해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준 느낌이랄까요. 하하하."(박용준)

 '마법의 성'은 정말 더 클래식이나 대중에게 마법 같은 곡이다. 김광진과 박용준이 TV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화면 속에서 또 무대 위에서 수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1994년 이맘 때쯤은 정말 저희에게 축복이었어요. 단지 노래 한 곡으로 무슨 해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그 큰 성공 뒤에 부담도 작용했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었죠."

쉽게 연상이 되지 않지만 김광진과 박용준은 아이돌 그룹의 성지 SM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이 있다. 김광진은 1990년대 초반 SM에서 음반을 냈다. 박용준은 SM뮤직에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아이돌 그룹이 주류가 된 지금 대중음악 신(scene)으로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구식 음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의 노래가 10년 후에 조금이나마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기억에 남아 계속 부를 수 있는 노래요."(김광진)

17년만에 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선 이들에게 낯선 것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해야 했다. 인터뷰하는 카페 책상에 노트북으로 자신들의 멘트를 받아치는 것조차 새롭다. 게다가 지난달 29일 앨범 수록곡 중 '우리에겐' '종이 피아노' 두 곡을 '음원'으로 먼저 공개했다. LP나 테이프 또는 CD 세대인 이들이 처음 겪는 일이다. 

스트리밍으로 10초만에 듣고 곡이 좋다, 싫다를 판단하는 현재 흐름에서 호흡이 긴 더 클래식의 노래는 요즘 세대들에게 낯설 법도 하다. 음절 단위로 끊는 요즘 노래의 가사와 시적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더 클래식의 노랫말 차이도 그렇다. 요즘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SNS라면 더 클래식 노래는 면 대 면으로 나누는 대화다. 

 "음원은 저희가 능하지 않은 영역이에요. 시스템이 바뀌어 위축되는 면도 있죠. 한 때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운 좋은 경험도 했지만, 이제는 음악에 대한 감성이 있고 저희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과 공유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김광진)

 "저희가 주류가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이죠. 다만 LP에서 CD, 다시 음원으로 매체가 바뀌면서 뮤지션들이 고생하고 노력한 흔적이 강탈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가를 바라거나 연연하는 건 아니지만, 안타까운 부분이기는 하죠."(박용준)

이번 앨범에는 앞서 선 공개한 두 곡을 비롯해 총 5곡이 실린다. 김광진이 만든 곡으로 디스코 리듬의 펑키 장르인 '비 유어 셀프', 역시 김광진이 작곡한 여백이 많은 '소소한 행복', 박용준의 호흡이 긴 곡인 '느린'이 포함된다. 더 클래식 같은 음악이면서도 새로운, 이들의 더 탄탄해진 음악적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이다. 

김광진은 무엇보다 이번 앨범으로 '더 클래식' 새 앨범에 대한 짐을 덜었다고 웃었다. "'메모리 앤 어 스텝', 즉 앨범 제목처럼 한 발자국을 내디딘 거죠. 저희의 장점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앞으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 클래식 17년만에 새 앨범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라는 것은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데 앞으로 괜찮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용준은 "늦더라도 많은 분이 음악을 들어보시고 '좋더라'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시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라고 웃었다. 

초등학생 때 10원짜리 엽서 100장을 사서 친구들에게 같이 '팬레터'를 보내자고 할 정도로 송창식의 '사생팬'이었다는 김광진은 인터뷰 끝에 자신들에게 "팬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누가 제 팬이라고 하면 거짓말 같아요."

앨범 발매에 맞춰 15일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팬 초청 음악감상회와 11월 15~16일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여는 '더 클래식 20주년 기념 공연'은 팬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줄 자리다.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만큼 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절실함'에 대해 반응을 해줄 기회다. 김광진은 "팬들의 반응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음악을 해나가는 이유가 되고 힘이 될 것 같다"면서도 이내 "반응이 크게 없어도 우리의 음악을 꿋꿋이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하는 카페에 걸린 스크린에서는 미국의 '국민 가수' 빌리 조엘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광진이 개인적인 '스승'으로 여기는 이다. 피아노에 기반을 둔 마법 같은 멜로디라는 공통점을 떠올리면 수긍할만하다. 

 "제가 빌리 조엘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누군가 저희 음악에 영향을 받고 좋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밴드 '버스커버스커'가 '동경소녀'로 회자가 되고 로이킴이 '편지'를 콘서트 때마다 부르니 이들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독일 음반 레이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 대표는 지난해 내한 당시 "카세트테이프를 포장지에서 뜯어낼 때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오는 잡음, 나는 그것이 음악이라는 범위 안에 다 포함된다고 여긴다"고 했다. 

더 클래식의 음악은 그 말에 가장 들어맞는다. 발매일에 맞춰 간 음반 가게에서 산 카세트테이프 또는 CD의 포장을 뜯을 때 재킷이 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음악, 더 클래식이 내년에 낼 예정인 정규음반도 그럴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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