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33)은 4년 전 영화 '방자전'에서 옷을 벗었다. '연기 변신'이라는 말을 붙여주기는 했지만 세간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다할 연기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평범한 배우가 노출 연기를 했다고 할 때 대중이 어떤 말을 할지는 뻔하다. '갈 데까지 가는구나.' 변신 이전에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변신'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어색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조여정의 배우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 나이 서른 살 때다.

'방자전'에서 나쁘지 않은 연기, '후궁'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더니, 이번 '인간중독'과 '표적'에서는 누가 봐도 좋은 연기를 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변화다. 특히 '인간중독'에서는 전혜진과 함께 주연배우를 압도하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것은 '방자전'에서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매번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30대'에 접어든 '여'배우가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 사례는 조여정 외에 쉽게 찾기 힘들다.

"(연기를) 그만두기 직전이었어요."

서른 살, 내세울 만한 영화나 드라마 하나 없이 10년이 지났다. 조여정은 "이제는 연기를 놓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직업을 10년 했는데도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죠. 연기에 대한 갈증은 있었어요. 제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 같은 게 있었죠.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 있잖아요. 그때 김대우 감독님이 '방자전'을 저에게 제안했어요. 기회가 찾아온 거죠. 꼭 잡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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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감독은 조여정 내면의 욕망을 봤다. 신분상승의 욕망으로 가득 찬 '춘향' 역에 캐스팅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조여정은 "사력을 다했다"고 한다. 가슴 속에 품었던 연기에 대한 욕망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배우는 어차피 대중에게 발가벗겨진 존재잖아요. 그건 노출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아니에요. '방자전'을 찍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제 욕망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작품에 노출이 있었던 것뿐이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방자전' 이후 4년, 그녀는 이제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됐다.

김대우 감독이 조여정에게 기회를 줬지만, 그 기회를 잡은 건 조여정 자신이다. 기회를 얻은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조여정의 방식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인간중독'을 보신 분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조연을 왜 했느냐고. 조연이고 주연이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재밌게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해요."

조여정은 "'안정적인 연기'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뭔가 정체된 듯한, 익숙해진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다 보면 좋은 평가와 그렇지 않은 평가가 있게 마련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평가가 엇갈린다고 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체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녀는 '인간중독'에서 권력욕에 취한 아줌마를 연기했다.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다.

이렇게 자기 만의 철학을 갖춰가는 배우가 되는 데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조금은 아쉽게 지내온 20대가 후회되지는 않을까. '조금 더 빨리 기회가 찾아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말이다.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일이 많지 않아서 평범한 20대를 보낼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얻은 게 많다"는 고백이다. "만일 그 시간에 경험한 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연기 인생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겁니다. 찰나가 중요해요.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래야 제 진심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 

조여정다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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