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2017년 NDC 기조강연자 이은석 디렉터 1.jpg
(아래 내용은 넥슨 이은석 디렉터 NDC기조연설 내용을 발표내용대로 정리한 것이다.)


발표에 앞서 ‘부분보다는 맥락’에 중심을 두고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오늘 발표는 1~2년 뒤가 아닌 10년 후의 변화를 다룬다는 점을 감안해 주었으면 한다.

재작년 NDC 때, 언젠가는 게임개발 로봇이 나올 것이라 언급했고 오늘은 이 얘기를 자세히 하겠다.

40여년 전, 만화 ‘도라에몽’의 한 장면은 컴퓨터가 SF 만화의 견본을 학습하고, 주인공들이 제시한 키워드로 한 권의 만화책을 단숨에 내놓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컴퓨터에게 노동의 대가인 ‘원고료’는 지급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지능화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이 같은 상황은 급격히 발달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이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기조 발표에서는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게임도 개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게임은 ‘디지털 시대의 놀이’이다. 놀이는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문명의 발전된 혁신을 이끌어온 우리에게 내재된 중요한 본능이기도 하다. 또한 게임은 가장 진화된 미디어이다. 읽고, 보고, 듣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일체를 요구하는데, 특히 ‘상호작용’은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고유한 특징이다.

게임의 가격은 얼마일까?
밥은 2천원에서 20만원, 즉 100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가방은 천원에서 천 만원, 약 만 배의 차이를 보인다. 밥값과 가방 값의 스케일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실물이 없는 재화인 영화는 대체로 1만원 남짓한 가격을 형성하며, 영화 제작비의 차이에 비해서 소비자의 구매 가격은 대체로 유사하다. 이는 영화가 디지털로 복제되어 공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운로드식 게임과 유사한 스트리밍 영화는 공짜에서 4천원 가까운 가격을 형성한다. 이 이유는 물리적인 판매공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각 영역 안에서 재화의 가격은 한계비용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밥과 가방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까닭도, 영화의 가격이 대체로 유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게임과 유사한 스트리밍 방식의 영화의 한계비용이 거의 없는데, 서버유지 및 회선비용 약간이 한계비용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 여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단, 유저의 시간은 24시간이기 때문에 수요에는 한계가 있으며, 때문에 여러 여가활동이 이 한정된 수요의 점유를 위해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게임과 식당에는 유사성이 있다. 게임의 개발과 운영을 요리에 적용하면 각각 요리와 서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체 수요에 한계가 있는 점도 유사하다 게임은 하루 24시간, 식당은 하루 세 끼가 한계이다. 단, 게임과 식당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한계비용이다. 게임은 태생적으로 글로벌 경쟁환경에 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 뉴욕에 있다 해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 세계 최고의 게임은 적은 비용으로 쉽게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이런 게임 세계는 역함수분표로이해할 수 있다. 물리적 연결 제약이 약한 네트웍에서는 소수의 노드에 쏠림이 생기고 극심한 빈익빈부익부가 생긴다. 게임의 평가는 대체로 이와 같은 정규분포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의 판매량은 거듭제곱형의 독식 모형에 가깝다. 상위 게임들만이 돈을 쓸어 모으며 12% 게임이 75%의 수익을 가져갈 수도 있다. 즉 게임산업은 승자독식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동력의 부상으로,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대량생산으로, 3차 산업혁명은 전자, 정보화로 촉발되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직 그 구체적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Industry 4.0과 혼용되고 있으며, 알파고 쇼크와 대선주자들의 언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구글 트렌드를 보면 전세계 검색어 인기 순위에 비해 한국의 그것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어떤 큰 변화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수확체증의 법칙에 대해 말하고 싶다. 혁신의 속도는 기존의 혁신에 힘을 받아 점차 빨라지는 속성을 지닌다. 즉 다음 스텝의 드라마틱한 혁신이 이뤄지는 주기는 점차 짧아진다.

알고리즘과 하드웨어, 빅데이터 분석 기술에 기반한 딥러닝은 인공지능에게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 학습된 인공지능은 이미 음성인식, 대출 승인, 온라인 광고, 언어 번역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이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만에서 수십만 개의 학습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은 한계로 볼 수 있다.

인지 자동화가 특히 인공지능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1초 이내의 즉각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일부 업무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가 가능하다.’라는 분석도 있다. 이로서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아직 인간 지능의 방대함에는 견줄 수 없지만, 훈련된 특정 분야에서는 인간의 문제해결 능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이미 인공지능에 의한 노동력의 대체는 현실화되고 있으며, 그 분야를 특정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운전 및 운수 영역의 육체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며, 자산 트레이더와 기사 작성 등 창조성과 숙련된 지능을 요구하는 일부 정신 노동직을 대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인공지능노동력은 점차 인간을 능가하는 가성비를 확보할 것이다. 최고 수준의 인간 노동력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담보하며,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시대에 새로이 창출되는 직업이 있을 수 있다.하지만 이 부분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혁신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 비숙련 노동계층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는 해당 분야의 모든 노동자가 자동화 관리자로 전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인공지능 시대에 최후까지 남을 직업은 로봇을 포함한 다양한 자본을 소유한 ‘자본주’일지도 모른다. 이는 로봇에게 소유의 권리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을 생계와 가사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은 자아실현과 즐거움만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있다. 동시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줄여 극심한 계층갈등이 발생하고 경제의 근간을 파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존재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가져올 희망적 미래를 위해서는 자동화로 인해 늘어나는 부를 직업이 없는 이들에게 기본적 소득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해법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의 게임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게임산업은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라 타 산업에 비해 인공지능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이는 하드웨어가 없기에 물리적인 상해에서 자유롭고, 인공지능 도구의 한계비용 역시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의 게임산업에는 크게 두 가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 첫째는 플랫폼의 독과점과 양극화이다.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가 참여하는 플랫폼의 양면성과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은 점차 더 커질 것이다. 또한 이들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는 신규 플랫폼에 진입장벽이 될 것이다.이에 게임산업에서 플랫폼과 퍼블리셔의 독과점 체제는 굳건해질 전망이다.

다음으로는 개발인력에 대한 수요 감소, 즉 ‘작아지는 개발팀’을 들 수 있다. 경쟁심화는 무인화를 심화시킨다. 경쟁으로 인해 악화되는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는 역설적으로 무인화를 촉발하고,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이는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게임산업에서 더욱 심할 수 있다.

게임은 태생적으로 유저의 시간을 오래 점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변화하는 콘텐츠’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도입은 흥미롭고 새로운 콘텐츠 생산을 자동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자동으로 레벨을 디자인하고, 배경아트를 제작할 수 있으며, 고해상도 3D 텍스쳐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례를 들어, 우리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설계된 알파고를 넘어, ‘상대 플레이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상의 ‘오메가고’를 상상할 수도 있다. 알파고는 인간 바둑기사의 기보 16만개, 3천만수를 학습해 인간을 이기는 기능만을 수행한다. 반면 ‘오메가고’는 다양한 인게이지먼트 데이터(뇌전도, 심박, 호흡, 눈깜빡임, 체온 등) 학습을 통해 상대의 실력에 맞춘 최적의 대국 경험과 아슬아슬한 승리의 기쁨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같은 상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한계 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인공지능들은 우리에게 공짜에 가까운, 그리고 유저의 시간을 더욱 오래 점유할 수 있는 게임들을 공급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최상위 레벨의 개발인력을 제외하면, 게임산업 내의 개발인력 수요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창의적인 일은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또한 자동화된 기계학습을 통해 특정 분야에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창의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프로그래머의 미래를 전망해보면, 상대적으로 코딩 분야는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위협에 대해 기업과 개인의 측면에서 대처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기업 측면에서는 우선 인공지능을 게임 개발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인공지능은 새로운 콘텐츠들을 끝없이 생산해 낼 수 있고, 개인별 맞춤형 콘텐츠를 소비자가 원하는 시점에 즉각 적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간 고유의 직관에 기반해 아직 없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도 의미 있는 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인공지능이 더 잘 수행할 수 있으며, 패턴화된 게임 제작은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IP와 브랜드를 통한 접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포케몬고의 전신인 인그레스와 포케몬고의 구글 트렌드 인기도를 비교해보면 사랑받는 IP를 보유한 포케몬고의 그것이 월등하다는 점을 볼 수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개인 차원에서는 우선 데이터화하기 힘든 영역에서 승부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데이터가 많은 영역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성장과정과 신체 및 생리구조를 보유하지 못한 인공지능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있어서는 명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협상하는 기능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이해에 기초한 일은 인공지능에 비해 인간이 월등할 수 있는 영역이다.  

또한 다소 희망적인 대처 방안으로 ‘자아실현을 고민할 것’을 제시한다. 인공지능의 활성화로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생산성에 매몰되지 않고, 의미 있는 일과 쓸데없는(하지만 기계는 할 수 없는)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이제 생산성이 아닌 자아실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발적 참여자들과 일하는 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팀 동료를 일의 일부로만 생각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과 재미, 성장을 제공하는 동반자로 인식한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