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 ‘내부자들’ 어때요?”

“재미있어요. 전 두 번 봤어요. 아직도 안 봤어요?”

“이번 주말에 꼭 봐야지.”

“그런데 31일에 3시간짜리 오리지널판도 개봉한답니다. 지금 상영하는 것은 2시간10분짜리거든요.”

“그래요? 그럼 기다렸다 그때 봐야겠네요.”

10일 기자와 한 기업체 홍보 담당자의 실제 대화다. 영화 기자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기자에게 ‘무비 골라주는’ 역할까지 기대한다.

요즘 대화의 소재가 되는 가장 핫한 영화는 역시 이병헌·조승우·백윤식의 ‘내부자들’이다.

낯선 듯하면서도 익숙한 소재, 흥미진진한 스토리,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 등으로 비수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 등 갖가지 악조건을 정면 돌파하며, 개봉 19일째인 7일 5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8일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돌연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하 디 오리지널)’을 31일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이 영화는 애초 러닝타임이 3시간 넘었지만, 극장 상영에 최적화하기 위해 2시간10분으로 확 줄여 개봉했다.

이로 인해 조폭 보스 ‘안상구’(이병헌)가 손목이 잘린 뒤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며 복수를 꿈꾸는 2년여의 세월은 나오지도 않았고,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의 분량이 많이 빠지면서 ‘편집국장’을 맡은 배우 김의성은 엔드 크레디트에만 ‘출연’하고 말았다.

우민호 감독과 배우들이 틈날 때마다 아쉬워하던 그 ‘사라진 50분’이 마침내 공개되는 것이다.

그동안 ‘감독판’ ‘확장판’ 등의 이름으로 개봉 전 잘린 분량 중 일부를 추가해 선보인 흥행 영화들은 꽤 된다. 그런데 50분 추가는 한국 영화 사상 최대 분량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쇼박스는 “‘디 오리지널’은 캐릭터의 전사(前史), 캐릭터 간 관계, 진짜 권력가들의 이야기 등을 더욱 심도 있게 다룰 것”이라고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이처럼 서둘러 ‘디 오리지널’ 개봉을 알려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카니발리제이션(자기 시장 잠식)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마니아나 주연 배우 골수 팬이 아닌 절대다수 일반인이라면 상영 중인 ‘내부자들’과 ‘디 오리지널’을 모두 보지는 않을 것이다. 티켓 값이야 같을테니 처음부터 3시간짜리인 ‘디 오리지널’을 보려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물론 “처음 개봉한 영화가 가장 완벽한 작품 아니겠냐”며 ‘내부자들’을 선택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디 오리지널이 작품 의도에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쇼박스 측 언급이 그들을 주저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다. ‘내부자들’을 보고 매료돼 한 번 더 보겠다고 기회만 엿보던 사람들이 ‘디 오리지널’ 개봉 소식을 듣고 나서도 처음 마음 먹었던 대로 ‘내부자들’을 또 볼까.

2013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 성인은 3950만명인 것이나 역대 청불 영화 최고 흥행작인 2001년 3월 ‘친구’(감독 곽경택)의 관객 기록이 820만명이고, 이후 청불 흥행작들의 관객 수가 최고 600만명대(‘아저씨’(감독 박정범) 약 618만명,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감독 매튜 본) 약 613만명)가 최고였던 것 등으로 볼 때 500만명 관객을 넘었다는 것은 ‘내부자들’을 볼 사람은 이미 대부분 봤다는 의미다.

한국 영화 대작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대호’(감독 박훈정) 등이 나란히 개봉하는 16일 이전에 ‘내부자들’이 600만 관객을 넘기려면 아직 안 본 사람들이 빨리 봐줘야 하고, 이미 본 사람은 서둘러 한 번씩 더 봐줘야 가능한데 그 마지막 스퍼트 직전에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채운 꼴이다.

기자는 앞서 2011년 9월13일 ‘최종병기 활, 19금 확장판 나온다’는 제하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그해 8월10일 개봉한 ‘최종병기 활’이 ‘15세 관람가’에 맞추기 위해 삭제했던 분량을 추가한다는 소식에 영화 팬은 열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630만 관객을 기록하며 질주하던 이 영화의 흥행은 이후 한풀 꺾여 같은 해 10월27일 약 747만 관객을 끝으로 스크린을 떠났다. 그 1주일 전인 10월20일 선보인 확장판은 11월 초까지 10여 일 상영하며 1만1547명을 들이는 데 그쳤다. 두 버전은 관객 수가 따로 집계되므로 확장판의 1만여 관객은 ‘최종병기 활’이 흥행 기록에 추가되지 않았다.

‘최종병기 활’을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 확장판을 기다리다 아예 안 봤을 리 없겠으나 기자는 ‘차라리 단독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김한민 감독을 만날 때마다 괜히 미안해했던 기억이 있다.

쇼박스와 ‘내부자들’ 측이 전략적으로 ‘디 오리지널’ 개봉을 발표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노파심을 갖게 되는 것은 ‘내부자들’의 대박이 현재 지나칠 정도로 편식 중인 한국 영화계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내부자들’은 모처럼 일반 국민과 유리된 ‘성층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정치·범죄 영화다. 또 2013년 2월 ‘신세계’(감독 박훈정) 이후 보기 드물게 다시 등장한 선 굵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이런 영화가 잘돼야 소재의 장벽을 넘어서는 영화가 또 제작될 수 있고, 떠났던 40대 중반 이상 남성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보러 극장을 다시 찾게 된다. 그러면 고무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는 앞다퉈 다른 영화를 준비한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1억 관객’을 들인 한국 영화의 스펙트럼도 그때야 비로소 다채로워질 수 있다.<뉴시스>